1928년 예루살렘대회 선언문

- IMC대회가 정식으로 채택한 비기독교 세계 조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메시지 분과위원회 선언문 -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온 세계가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느낌 속에 있다. 고대 종교들은 현대 인간들의 사상이 바뀌고 과학과 상업이 발전하는 것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파멸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오랜 세월 존중되고 존경 받던 제도들이 버림 받거나 의심받게 되고 굳건하던 도덕적 표준행위들이 비판을 받게 되고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같이 여전히 압박을 느끼고있다. 모든 면에서 어떤완전한 진리와 선(善)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심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상대주의(相對主義)가 인간사상의 왕좌를 차지하고자 몸부림친다.이에 따라서 모든 보다 높은 가치들이 부분적으로 파멸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삶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기초에 대한 절통하고도 간절한 추구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의 산고(産苦)와 인종과 계급의 압박에 대한 범세계적인 고통과 아픔에 대한 매우 예민한 양심의 소리가 발견되고 있다.물질적 관심에 대한 열중과 무관심이 널리 퍼진 한 가운데 우리는 또한 여러 곳에서 국제 평화와 인류애와 사회 정의와 종교적 진실과, 영적 지도력과, 권위와, 완전하고 방해 받지 않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당당한 모습과 함께 특별히 젊은이들의 세계에서의 방종과 낭비와 엄청난 열망을 발견한다.이러한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나타내시고 전에 없이 인간들이 관심과 존경을 가지고 그를 모색하는데 대하여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서구 문명보다 크고 세계가 알고자 하는 기독교보다 큰 존재로 분명하게 인간들 앞에 서 계신다.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교회에 돌아오지 않은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를 그들의 영웅으로 또한 이상(理想)으로 발견하고 있다.그의 교회 안에는 그의 인격의 중심인 연합에 대한 광범한 열망이 있다.

우리의 메시지
이러한 배경에 대비하여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우리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그가 이루시고자 하신바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계시이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주의 궁극적 실체와 함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완전하고 또한 무한한사랑과 공의로우신 우리 아버지로 알게 하신다. 그 안에서 우리는 도성인신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또한 영원히 나타내시며 우리로 하여금 살고 움직이며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을 발견한다.우리는 어둠과 빛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역하시며 통치하시고 지배하심을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아버지와, 최고의 존재이시며, 전능하신 사랑을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그와 화해시키고, 죄악의 무거운 짐을 진저들을 용서하시고, 저들의 마음의 용서와 함께 회개와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하시며, 보다 크고 넓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심을 믿는다.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에 때한 시각은 우리에게 죄와 범행의 감정을 깊게 만든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치 않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의 거룩하신 뜻을 거역하였다. 또한 범죄에 대한 감정이 가져오는 이같은 시각은 우리가 만일 우리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 앞에 굴복시킨다면 죄 사하심에 대한 확증에게로 인도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의 속죄의사랑이 우리를 하나님과 더불어 화해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나타내심같이 언제나 또한 모든환경에서와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의롭게 사랑을 가지고살도록 모든 그의 자녀에게 요구하심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성령의 은사로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능력을 주시고 그의 나라의 임하심과 그 완성을 위한 준비를 위한 자기 희생과 모험적 생활을 강권하신다.우리는 얼마 전 1927년 8월 로잔에서 모인 신앙과 제도에 대한 세계대회가이 주제에 대한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하고 그것을 대회가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하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공식적인 기독교 신앙에 관한 메시지를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의 것을 만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세계를 향한 교회의 메시지는 반드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머물러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위한 현재와 오는 시대를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속죄의 기쁜 소식이다. “세계는 하나님의 모든 인류를 위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그러나 특별히 구약성경 안에 주어진 그의 계시로 준비되었으며; 때가 차매 하나님의 말씀은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은혜가 진리가 충만한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그의 생애와 가르치심, 회개를 위한 그의 부르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심과 심판에 대한 그의 선언과, 그의 고난과 죽으심과, 그의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로의 승천, 우리를 향한 그의 한없는 사랑,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나타나심, 그가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여 불러내심과, 성령의 선교에 의하여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나타내셨다. 사랑의 부르심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그것을 완성하심을 보여주심으로 그가 우리를 새로운 신앙의 삶과, 자기 희생과, 그의 봉사와, 인간들의 봉사에로의 헌신에로 부르신다. “주와 구주로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교회와 사도들의 세계적인 복음의 중심이시다. 그 자신 때문에 그는 복음이시며 복음은 세계에 대한 교회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철학적 이론 이상이며, 신학적 조직 이상이며, 물질적 개선 이상의 것이다. 복음은 오히려 이 옛 세상의 죄와 죽음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새로운 세계를 위한 선물이며, 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이고, 찬송과 기도와 봉사의 교제 안에서의 연합된 성도의교통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가족이 함께 결합된 그의 영원한 생명의 메시지이다.
“복음은 죄인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예언적인 부르심이며, 모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의롭다 하심과 성화시키는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고난당하는 자에 대한 위로이며, 매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해방의 보증이다. 복음은 마음에 기쁨과 자유를 가져오며,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게 하며, 형제로서의 봉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사랑의 긍휼을 수행하게 한다. 그것은 젊은이의 열성을 위한 최고의 목표를 제공하고, 노동자를 강건하게 하고, 피곤한 자를 편히 쉬게 하며, 순교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가져다준다. 복음은 사회 개혁의 참된 힘의 자원이다. 그것은 인간이 오늘의 사회를 황폐케 하는 계급과 인종간의 증오로부터 민족적 행복의 즐거움과 국제적 친선과 평화에로 가게 하는 오직 유일한 길임을 선언한다. 그것은 또한 동과 서의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살아계신 주님의 기쁨에로 들어가게 하는 영광스러운 초청이다. 우리 시대의 심한 고통을 동정하고 지성적 성실성과 종교적 영감과 사회 정의를 추구하면서 현대 세계 하나님이 주신 열망을 교회가 영원한 복음 안에서 필요를 충족시키고 완성시킨다. 결과적으로 과거에서와 같이 현재에도 역시 복음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이처럼 그의 교회를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내게로 오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선교의 동기
만일 그것이 우리의 메시지라면 그것을 전달하는 동기는 분명해야 할 것이다. 복음은 세계의 가장 큰 필요에 대한 해답이다. 그것은 우리의 발견이나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활동으로 이해하는바 그것이다. 그것은 ‘좋은 소식’의 첫째이며 또한 최우선이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진리의 발표이다. 그 참 본질은 우리에게 아마도 다른 믿음보다 바른 믿음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금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참되지 아니하거나 전적으로 참되거나 한 것이다.그러나 선교의 동기에 대한 의문은 광범하게 일어났고 지난 시대의 인간 사상의 관습이 변하는 것처럼 이 의문들의 재검토를 위한 요구도 입증되었다.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를 선교사업에 몰두하게 하는 동기들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의 건전성에 대한 우리 영혼의 냉혹하고 가혹한 자기비판의 요구를 인식한다. 우리를 촉구하는 동기들의 조사에서 우리는 이 운동의 역사 속에서 순수한 동기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분명한 동기들이 순수한 동기들에 혼합되어 버렸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우리는 선교를 위한 어떤 목적을 위하여 정부 또는 무역상들과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어떤 시도도 하는 것을 거부한다. 복음은 그 근본 본질상 그리고 인간 인격 상태의 신성함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착취에도 반대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어떤 욕구도 이 운동이 어떤 사람들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노예로 매이게 하는 목적에 대하여 관대할 수 없다.더 깊이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들의 관심을 사서 저들의 영혼을 조롱하고자 신앙과 행위를 강요하기 위한 욕망을 나타내는 종교 제국주의적 어떤 증상도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존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도 존중히 여기기를 소원한다.우리는 서구 교회의 경험에 의하여 그 뜻을 해석하고 제정된 교회 양식에 복음을 얽매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우리의 집합된 모든 지역의 젊은 교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그것이 축적된 참된 유산이라는 것과 그것이 함께 나눌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그러나 젊은 교회들이 저들 자신의 창조적이고 저들의 유산으로부터 나온 아름다운 양식을 통한 복음이 표현을 간절히 소원한다. 그것은 개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신앙을 좌지우지하려는 소원이 아니다. 우리의 참되고 강권하시는 동기가 우리의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참되신 본성에 있다. 그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의 참되신 본성은 나누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원하신 스스로 주신 그대로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와의 고통의 시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그를 공유하도록 우리 자신 안에 제압하시는 충동을 발견한다.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그의 최후의 명령에의 순종에 매여 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 함이라.” 하셨고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그것을 확증한다.그는 우리에게 생명이 되셨다. 우리는 그 생명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사회와 민족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의 인격으로부터 도덕적 타락과 범죄의속박이 깨어진 것과 인간들이 자유를 얻게 되고 그러한 개인적 자유가 우리를 글어 조이는 악한 풍습과 말라죽게 하는 사회적 관습들과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기초를 놓음으로써 인간들과 사회와 민족들을 바로 서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완성시킨다고 믿는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히 그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우리를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 소망을 얻게 하는 힘의 무한한 자원을 발견한다. 우리는 그러한사상이 잃어버린 삶에 대한 도덕적 신경이 삶을 향하여 활기를 띠게 한다는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삶이 취하여야 할 양식에 대한 표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세계를 믿는다. 우리는 그보다 좋은것은 없다는 것을 알며 우리가 만족할만한 보다 작은 것은 없다. 우리는 저들만이 필요하거나 그것들이 가장 나쁜 세게이기 때문에 비 기독교인이라 부르는 민족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들의 필요와 우리 자신들의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리스도를 닮은 그 표본에 따라 다시 만들어지기 위하여 그리고 완전하고 풍성한 생명을 가질 필요 때문에 가는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고 그의 영이 다스리시는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를 떠나서는 참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 조상들은 그리스도 없이 죽는 인간들의 공포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 공포를 공유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 없이 사는 공포에 싸여있다.여기에 기독교인의 동기가 있으며 그것은 단순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살 수 없으며 인간들이 그가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세계에 산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데 대하여 그의 마음이 갈망하는 동안 우리는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그리스도는 우리의 동기이며 그 동기를 성취하기 위한 기독교 선교의 목적이다. 그 목적은 신령한 사회의 삶의 협동적 나눔과 살아계신 구주이신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신앙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와 민족들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생산보다 더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동기이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적이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보다 덜 줄 수 없고 또한 그보다 더 줄수도 없다.

우리 노력의 정신
우리의 과업에 대한 우리의 접촉은 겸손과 회개와 사랑을 가지고 행해져야 하며 그것은 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며, 만약 우리가 자기 확신을 전달하게 되면 그 메시지를 우리가 손상시키는 것을 어디서나 발견하게 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회개는 우리 신앙이 함축하고 있는 많은 것에 대하여 우리의 조상들과 우리가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며, 사랑은 우리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이며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에 의해서만 우리가 말하는 그들을 위하여 우리가 복음의 능력과 그 참된 본질을 알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는 늙은 교회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과 모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그들의 책임을 이행하는 데 게으른 것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그에 일치하게 사람들의 삶의 질서를 가져오는데 등한히 한 것을 고백한다.교회가 인종간의 반목과 인종간의 질투와 인종 멸시, 또는 사회적, 민족적대립과 사회적 자만심과 또는 부에 대한 욕망과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착취에 대하여 굳건하고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우리는 복음은 인간성을 계급과 종족간의 반목으로부터 탈출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선언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요구들이 잘 달성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기독교계의 기록들을 인식해야 한다.우리들은 저들을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 더 강력하게 끌어들이기 위한 면에서 비기독교 신앙의 선하고 훌륭한 내용들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하여 그런 신앙을 가진 신도들과의 깊은 교제들을 충분하게 시도하지 않았었다.우리는 사람들이 저들이 가진 최고의 빛에 이를 때에 그리스도의 지식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조차 떠나고 세상을 괴롭히는 많은 악으로부터 저들이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 가능케 하도록,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저들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충만한 빛을 발견하도록 고무한다는 것을 안다.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기록하는 동안 우리는 또한 이 지역에서의 기독교가 성취한 일들에 대한 감사에 넘치는 기록들에 매여 있다. 성 바울이 살던 유럽과 단테와 루터와 웨슬레가 알던 유럽의 차이는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지구의 모든 부면으로부터 여성에 대한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해방에 대한 증언들이 나타나고 있다.산업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변화와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 사회운동과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생활과 노동에 관한 세계회의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참으로 우리의 노력들은 그리스도의 주장과 세계의 요구와 더불어 균형을 맞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앞으로 오는 시대들을 위하여 우리가 이미 커다란 격려를 가지고 시도하였고 또한 그것을 성취하였다. 특별한 것은 정쟁과 그것을 향하여 이끌게 될 상황들에 대한 양심의 보다 큰 예민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기독교인들 간에 그리스도의 정신의 성장하는 힘의 이 모든 징후들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사상과 활동의 개척을 위하여 준비할 것을 호소한다.교회는 너무도 자주 저들에게 부딪친 위험이 지나간 나음에야 선교사업을위한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사실을 채택한다. 거기에는 조급함의 위험이 도사린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간사상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에게 올바로 속한 사업이나 새로운 진리의 영광에 대하여 그의 교회가주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지나친 조심성이 있을 수 있다.

세계에 대한 호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주이시며 모든 세계와 우리들의 필수적인 요구는 그만이 공급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형제 된 그리스도인과 또한 우리의 형제 된 모든 인간들이 용서를 받고 능력을 얻기 위하여 그에게 돌아올 것을 호소한다.

1.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하여 우리는 호소한다
저들은 그리스도인의 확신과 반석 위에 굳게 서서 그 선교의 의무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 교회를 위하여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각자의 특권과 의무인 그의 다함이 없으신 부요하심과 성령의 능력과 자유케 하심으로 저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충성을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악과 부정의의 얽힘 속에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과 기독교를 증거하기 위하여 저들은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저들이 유지하는 사회 기관들에서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한다.그것은 저들 앞에서 사람들 간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그를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미움에 대하여 사랑으로 보답하는 정신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게 된 그들에게서 분명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저들은 또한 저들의 일의 한 복판에서의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는 데와 섬기는 사역에 사회적, 국제적, 인종 간 관계에서의 영향을 확실하게 발휘하여야 하는 데 매어야 할 것이다.특별히 만일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비기독교 국가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원리와 상반되고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한 관계를 느낀다면 그것은 심각하고 선교사역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렇게 비판 받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러한 장애를 옮기도록 희생적으로 노력할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과업은 우리의 능력들보다훨씬 큰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받은 성령의 능력을 우리가 받고 그와 교통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 간의 전적인 동참을 위하여 호소한다. 그들의 조직이나 전통들과의 어떤 에누리도 없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손해를 봄이 없이 우리를 지키도록 하려는어떠한 시도도 실패할 것이다. 고립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생활을 메마르게하고 그의 활동을 무기력하게 한다. 우리의 건강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살아있는 교제로부터 온다.그러나 또한 이러한 분주하고 열정적인 날들과 함께 때때로 세상으로부터 초연한 시간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과의 고독한 교제를 통하여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보다 깊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보다 많은 분량의 중재의 기도를 하도록 호소를 보낸다. 모든 교회는 반드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각 부분에서 그리고 모두 함께 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온 세계가 하나님의 일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기도에 긴급하고 간절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불안정함과 당황케 함과 방종함에 대항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가 몹시 필요한 기독교 인생관과 세계관을 실천할 수 있는 그들의 재능을 바칠 수 있도록 과학과 예술과 철학에 훈련된 모든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한다.마지막으로 우리는 복음의 참된 교제를 이루기 위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재촉한다. 서구의 교회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들을 위하여선교사를 보내고 선교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우리로부터 선교사를 보냄 받은 젊은 교회들이 발전하여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을 위하여 영적인 생활을 돕고 저들의 재물로 섬길 때가 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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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또한 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호소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빛의 완전한 광채가 모든 사람에게 비치시는 빛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 같은 빛이 그를 알지 못하거나 또는 거절하는사람들에게까지도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증거 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과 비기독교인들 개인과 조직들의 모든 훌륭한 특성들이 그 아들을 보내주신 아버지의 한층 더한 증거임을 환영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들의 영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지 않고 단지 예를 들어왔었다.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 추구에 무관심한 사람들에대하여서와; 예배의 엄격함으로 유명한 이슬람과; 세계의 비참함에 대한 연민과 해탈의 길을 위한 무아(無我)를 추구하는 불교와; 영을 통한 궁극적 실재와의 접촉을 소원하는 힌두교와; 우주의 도덕적 질서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실천에 대한 논리를 강조하는 유교 등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진리의한 부분으로 인식한다.우리는 특히 성경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육신으로오신” 그의 거룩하심의 열심과 예언적 말씀과 그들의 민족적 소망을 이루신 주님에게로 그들이 돌아오도록 마음을 여실 유대인들에게 우리의 부름을 전한다.그리고 우리는 모든 땅의 우리의 형제 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저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사랑과 친절을 보여줄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비기독교신자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세계의 생명 속에 그가 살아계심에 대하여 성경에서 그가 우리 앞에 계심같이 그리스도를 배우는데 우리와 함께 하도록; 물질주의가 성장하는 세계 앞에서 보이지 않는 굳은 신앙을 가지도록; 가정과 친구와 갈라서지 않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도록; 세속주의의 모든 악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우리와 협력하도록;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지고 확신에 이르게 된 모든 선을 식별할 수 있도록 호소한다.기독교는 서양 종교가 아니며 아직 서구 세계가 모두 완전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유럽과 미국 사람들에게 속한 만큼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속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앞으로 오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우리는 민족적 유산이나 종교적 전통에 대한 자만심으로 그에게 나아가서는 안 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갗이 되어야 하고,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모든 재물에 대한 열망이 희생되고 조화되어야만 한다.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스스로 나타남이며 모든 인간의 열망이 그를향하여 있기 때문에 그는 단순히 인간 전통의 연장이 아니다. 그는 모든 민족의 소망이시다. 그리고 그는 항상 저들이 그를 배운데서 얻은 것보다 훨씬 더한 분이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의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에 나타나실때에는 불교인이나 모슬렘 신도나 그 어떤 종교인들이건 간에 오직 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을 지혜롭게 접촉하기 위하여 다른 종교를 올바르게 연구할 때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들간에 말하고, 저들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생명과 용서에 대하여 우리와 함께 공유하도록 초청하는 것이라야 한다.

3. 세속적 문명의 유익과 그 발전에 공헌하는 것을 계승할 모든 사람들에게우리의 호소를 보낸다.우리는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노력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장한다.우리는 무식함과 미신과 저속한 어두움의 발산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의(大義)에 대한 저들의 봉사를 인식한다. 우리는 또한 나라에 대한 사랑을 일으키는 민족운동에서 발견되는 고귀한 요소들과 애국주의, 충성심, 자기 헌신,그리고 이상주의에 대하여 감사한다.그러나 만일 저들이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싸움과 비통함과 좁은 견해에 빠지게 만들고 말 것이다.그리스도의 모든 민족에 대한 사랑의 우주적 왕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서만 저들의 참 운명이 완성된다. 애국심과 과학이 희생되지 않을 때에는 저들은 때때로 자기 고집과 착취와 탐욕에 빠진다.과연 우리의 위대한 신기원의 특성이었던 자연 자원에 대한 인간 능력의 방대한 개발로 인하여 모든 민족들에 대한 거대한 위난(危難)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영적 또한 도덕적 지배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산업 투쟁의 충돌의 한복판에서 복음은 인간 가정의 선한 삶의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서로가 형제들로서 함께 일하도록 요구한다. 사회적 혐오와 복음의 배타성의 존재 속애서 우리가 가정생활의 풍요를 위하여 그의 특별한 공헌을 이루도록 하는 한 가족이 될 것을 강권한다.주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지속적으로 우롱하는 국제 관계에 맞서서 모든 민중을 위하여 모든 경우의 전쟁과 전쟁의 위험이 제거되고 정의가 보증되는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엄숙한 책임을 진 모든 사람들에게 지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그것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의 제한 없는 수용과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하여서만 달성될 수 있다.“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하신 말씀이 우리의 귀에 아직 생생하게 울린다.

결론
우리의 대회에서 우리는 다같이 복음의 충족함과 완전함과 우리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필요를 보다 분명하게 보았다. 이 시대의 확대되는 사상을통하여 복음과 구세주가 인간들이 알던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위대함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 복음의 세계성과 충분성에 대항 깊은 확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의견의 조직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남녀 모든 인간 존재를 위하여 그 복음 전파의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발견되어야만 한다.보다 완전한 그리고 기독교의 지적 확신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설명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복음은 또한 반드시 세계의 깊은 소원과 인간의 요구에 대한 봉사에 의하여 그리고 공의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정의와 연민과 긍휼과 말과 행위와 삶을 통하여 인간의 심장과 마음속에 순결한 사랑을 가지고 표현되어야 한다.우리는 모든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세계와 인간들의 요구를 연구함으로써 모든 땅에 기독교 세력이 더 크게 증가되어야 할 것과 세계와 인간 생활에 미치지 못한 모든 부면에 그리스도가 보다 신속히 전파되기 위하여 모든민족들의 교회를 상호간의 보다 전폭적인 협력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확신하게 되었다.우리는 우리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보다 영웅적 실천을 추구하도록강권되었다. 우리의 현대 세계의 죄와 악과 탐욕의 복판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심정에 대한 충성된 표현에 대한 오늘의 자기 만족과 절제로서는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명하신 일에 대하여 심사숙고한대로 갈보리가 보이는 감람산이 있는 이곳에모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함께 지고 돌아가도록, 그리고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안에서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고난과 동참하며 살기 위하여 세계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간절히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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